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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윤여정 한국 배우 최초 美오스카상 여우조연상 수상

배우 윤여정이 美오스카상 여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보랏 서브 시퀀트 무비 필름의 마리야 바칼 로바, 힐빌리의 노래 글렌 클로스,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얻은 영예다.

 

 

한국 배우가 미국 최대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시아계로는 역대 두 번째로, 1958년 제1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사요나라(1957)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이다. 우메키 미요시는 수상 당시 일본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상태였다.

 

브래드 피트의 호명에 무대에 오른 윤여정은 아카데미 관계자와 '미나리'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한 뒤 "특히 정이삭 감독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다"며 "우리의 선장이자 나의 감독이었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또한 "항상 일하러 나가라고 잔소리하는 두 아들"에게도 감사를 전한 윤여정은 마지막으로 김기영 감독을 언급했다. 
그는 "김기영 감독님에게 감사하다. 나의 첫 번째 영화를 연출한 첫 감독님이다"라고 소개한 뒤 "여전히 살아계신다면 수상을 기뻐해 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정의 겸손한 수상소감에 아만다 사이프리드 감격

윤여정의 투박한 듯 하지만 정확한 어법과 재치 있는 수상 소감이 美 ABC방송 라이브로 송출되었다. 윤여정은 수상 중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굵직한 미국 배우들을 언급하며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계속 그녀의 작품을 지켜봐 온 글렌 클로즈와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나? 다섯 후보들은 다 각자의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했다. 내가 운이 더 좋아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미국 분들이 한국 배우들에게 특히 환대를 해주시는 것 같다.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겸손한 수상 소감을 전했고 윤여정의 위트 있고 겸손한 수상 소감에 감탄한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글 렌 클로즈의 표정이 클로즈업됐다. 

 

글렌 클로즈는 윤여정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자신의 수상임에도 글렌 클로즈를 대배우라 칭해주는 윤여정에게"너무 사랑스럽다"는 말을 하며 박수를 치고 감탄했다.

 

"사람을 인종, 젠더 등으로 구분 짓지 말고 다양한 색깔을 담아야 한다"

그러면서"저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며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미국 내 장기화된 코로나로 인해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최근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면서 BTS, 에릭남, 박재범, 씨엘 등 K팝 스타들과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 다니엘 김, 스티븐 연 등이 "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미나리 공개 이후 받은 트로피만 30여 개

윤여정의 수상은 일찍부터 점쳐졌다. 미나리가 지난해 초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여러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100여 개의 상을 받았는데 이 중, 윤여정이 안은 트로피만 30개가 넘었다. 미국 현지 언론은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했고, 결국 이변은 없었다.

 

주한대사 트위터에서도 수상 축하글 게재

미국 주한대사 트위터에도 윤여정 수상 소식에 대해 축하 글이 올라왔다.

 

 

 

미나리 

영화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고 연출한 영화로, 1980년대 미국 남부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 중 윤여정은 딸 모니카(한예리) 부부를 돕고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순자를 연기했다. 아이들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등 전형적인 할머니의 틀을 벗어난, 유쾌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연기로 호평받았다.

 

미나리를 닮았던 그녀의 억척스러운 삶

배우 윤여정의 삶은 미나리처럼 억척스러웠다. 1966년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고 김기영 감독의 작품'화녀'를 통해 제1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제에서는 여우주연상, 제4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온갖 상을 휩쓸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녀는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며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결혼과 동시에 그녀는 배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갔고, 결혼생활 13년 만에 맞은 파경이 복귀에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그때 당시 이혼은 흔한 일이 아니었고 이혼녀라는 수식어가 어색할 때였다. '이혼녀'라서 TV에 나오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고 결국 그녀는 홀로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단역, 조연 가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늘에서 쌓은 단단해진 연기력으로 다시 일어섰고 다양한 작품 경험으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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